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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전시 그리고 책

네가 내가 되었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by Jay-ing 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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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내가 원하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검색하고 그 책을 찾아서 빌린다기 보다는, 책꽂이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내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편이다.

 

그래서 책을 빌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이미 읽었던 책을 또 빌리기도 하고, 혹은 그저 제목만으로 날 사로잡는 책을 빌려오기도 한다.

 

이 책은 두 번째 경우였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건, 2009년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책 추천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추천 받은 책을 애써 찾는다기 보다는 도서관 책장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그 책을 발견하면 빌리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친구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했고, 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에 아마 기억을 하고 있었나보다. 도서관에 들렸다가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익숙한 제목에 빌려와서 읽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무덤덤하게 읽어내려갔던 책을, 얼마 전 도서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너덜너덜해진 책을 보면서, 지난 3-4년 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되었던걸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걸까, 생각했다.

 

책의 첫 장이 굉장히 낯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첫 장부터 나타난 '너'는 새삼스러웠다.

 

 

 

대부분의 책이 '나'라는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독특하게도 이 책은 '너'라는 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잘은 모르겠지만, 작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너'는 아마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되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네가 내가 되었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모든 '너'가 책 속의 '나'가 될 수 있었으니까.

 

 

아마 이때문에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책에 얼만큼 몰입하느냐에 따라서 느끼는 바가 다를 것 같다. 나와 다른 소설 속 어느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마치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나.)

 

 

 

 

 

 

 

 

 

책을 덮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아, 원래 엄마였던 사람은 세상에 없었겠구나.'

 

 

 

당연한 사실을 왜 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걸까?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사람이었으니까, 엄마의 10대, 20대, 엄마도 누군가에게 딸이라고, 학생이라고, 아가씨라고 불려졌을 그 때에 나는 없었으니까.

 

내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옷을 입고,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그저 "OO엄마" 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엄마의 진짜 이름보다는, 자식의 이름으로, 혹은 누구 엄마라는 말로 더 많이 불려지는걸 많이 봤으니까.

 

가끔 엄마 친구분들께서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걸 들을 때가 있다. 내 친구가, 내 선배가, 내 후배가, 아빠엄마 친구 분들이, 고모가, 이모가, 삼촌이, 외숙모가, 고모부가, 이모부가, 친척들이 당연히 나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엄마의 이름이 있는데, 엄마의 이름이 들릴 때 왜 그렇게 낯설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갓난아기 시절.

 

아빠와 엄마의 손이, 눈이 나에게서 떨어질 수 없었던 시절. 혼자서는 밥 먹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걷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듯이, 아빠와 엄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

 

나에게 부모님은 당연한 존재였고, 원래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 느껴졌지만 그건 아니였다.

 

 

 

언젠가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이제는 아빠와 엄마가, 아빠엄마의 힘으로 밥을 먹거나, 걷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옷을 입거나, 그런 일련의 생활을 하기가 버거워 질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그 때 잊지 말자.

 

내가 어렸을 때. 내 힘으로 아무것도 못했던 그 시절, 나를 감싸고 키웠던 그 손을.

 

그 손이, 그 정성이, 그 눈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테니까.

 

 

 

부모님의 늙어감을, 그 과정에서 오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들을. "잘 모르니까, 대화가 안 되니까, 세대차이가 나니까," 라는 말로 벽을 쌓지는 말자.

 

그러기엔, 아빠엄마에게 받은 것들이 너무 많더라.

 

 

 

원래 엄마였던 사람도, 원래 아빠였던 사람도 없다.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온전히 자식들의 삶을 위해 살았던 부모님들의 헌신, 혼자 사회에 두 발 딛고 설 수 있는 지금부터 천천히, 하나씩 갚아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