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돈내산☻/전시 그리고 책

[영화] 두 개의 문 : 그 날, 그 곳의 모두가 피해자였다

by Jay-ing 2012. 7. 19.
728x90

 

2할4푼 기고 글임을 밝힙니다.

2할4푼 :: http://2hal4pun.tistory.com/84

 

--------------------------------------------------------------------------------------------------

 

 

영화 <두 개의 문> 포스터 ⓒ연분홍치마

 

 영화를 보러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설렌 적이 얼마 만이었을까. 그 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무거운 진실을 스크린을 통해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가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이 다큐멘터리가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대변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사람들이 모두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줬다. 그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어느 한 쪽의 감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보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그 날의 용산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날, 여러 매체를 통해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듣고 중립을 지키려 무던히도 애쓰며 써놓은 그 날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영화를 보기 전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유가족의 동의가 없었던 시신 부검, 사라진 3000쪽의 수사 기록, 삭제된 채증 영상. 과연 용산 참사에 숨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남일당 건물 옥상에 지어진 망루를 뻘건 화염이 집어삼키면서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몇 번을 다시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 같은 그 장면. 하늘까지 치솟은 화염과, 영상을 보기만 해도 매캐함이 느껴지는 검은 연기는 망루 안에 있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감히 짐작하게 해 주었다. 6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 참사의 화재 현장을 오롯이 보여준 후, 다큐멘터리는 담담하게 그 참사가 일어나게 된 과정을 되짚기 시작했다.

 

 보태거나 보태지 아니함이 없이, 영상은 그렇게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철거민과 경찰 특공대의 대립 구도가 아닌, 그 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평생을 가져갈 고통과 아픔이 궁극적으로 누구의 책임인지 관객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나를 2009년 1월 20일, 그 날의 용산에 데려다 줬다.

 

지금까지 나는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 1명이 누구의 잘못으로 죽었는가, 그 원인은 둘 중 누구인가, 누구에게 더 큰 잘못이 있는가.” 에 초점을 맞춰 용산 참사를 바라봤다. 그렇기 때문에 철거민과 경찰 특공대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을 보면서 내가 바라봤던 용산 참사는 지극히 좁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철거민과 경찰 특공대, 모두가 피해자였던 것이다. 철거민과 경찰 특공대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더 큰 세상이 얽혀있음을 알게 되었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그 잘못의 원인이 철거민들에게 있는지, 경찰 특공대에게 있는지를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다만, 철거민과 경찰 특공대원이 상급자들에 의해 희생당한, 모두가 피해자였던 사건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간 지 25시간 만에 철거민들은 싸늘한 주검, 혹은 용산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목 받은 범법자가 되어 다시 땅을 밟게 되었다. 농성 하루, 고작 25시간 만에 몇몇의 철거 농성자들은 유명을 달리 했고, 망루는 무너졌다. 아마 그들도 25시간 만에 다시 땅을 밟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6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진압 사건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용산 참사를 ‘이명박 정권이 흔들릴 만한 큰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25시간 만에 이루어진 너무나도 신속한 진압이었지만, 진압 과정에는 허점이 가득했다. 망루 진압을 명령했던 상급자들, 그들은 망루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남일당 건물의 두 개의 문 ? 하나는 망루로 향하는 문, 다른 하나는 창고로 향하는 문 - 중, 어느 문이 망루로 향하는 문인지 알지 못했다. 망루 안에 휘발성 물질(시너)이 얼마만큼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 마디로 성급했다. ‘성급함’, 이 것 말고는 이 날의 참혹함을 설명해 줄 단어가 없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연속적으로 보인 영상은 철거민보다는 경찰 특공대와 더 가까이 위치했다. 전체적인 다큐멘터리의 흐름 역시, 경찰 특공대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됐다.

 

 

 

영화 <두 개의 문> 속 장면  ⓒ연분홍치마

 

 남일당 건물에서 던져지는 화염병과 골프공을 그저 방패와 얇은 판자로 막으며 건물로 진입하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그들의 법정 진술이 녹취된 부분에서, 그 날의 용산을 ‘생지옥’ 으로 표현하는 것을 들으며 ‘그들에게도 이 날의 트라우마가 죽을 때까지 따라가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경찰 버스에서 대기하는 경찰 특공대원들의 모습을 재연한 영상에서, 특공대원 한 명 한 명을 클로즈업 할 때 마다 불안함이 여과 없이 묻어 나오는 얼굴을 보며 그들 역시 그 날의 피해자였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느꼈다.

 

 경찰 특공대의 서면 진술서에 이런 글이 있었다. “사망한 철거민이나 우리 대원들 모두 사랑하는 우리 국민입니다.” 남일당 옥상에 올랐던 철거민도, 그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투입된 경찰 특공대원도 우리의 친구이고, 부모이고,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 날, 그 곳의 모두가 피해자였던 것이다.

반성했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희생되는 개개인들이 너무나도 가까운 주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날의 용산에서도 남일당 앞거리로 화염병과 골프공이 던져졌지만,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발생했던 불편한 일련의 사건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는 없을 일이라고 단정 지으며 그렇게 그들의 외침을 모르는 척 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그 날의 용산을 보여준 다큐멘터리였다. 용산 참사가 발생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용산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감정을 절제하고, 치열하고도 잔인했던 그 날의 25시간을 100분의 러닝타임으로 탄탄하게 구성하여 보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사실을 병치함으로써 담담히, 하지만 단단하게 용산 참사의 현장을 그려냈다. 두 개의 문 중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든, 그 날의 죽음과 만나야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용산 참사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에서 조금은 적극적인 태도로 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나의 눈이 아닌 두 개의 눈으로 균형 있게 용산 참사를 다뤘기에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날의 용산에서 유명을 달리 한 5명의 철거 농성자 분들과 1명의 경찰 특공대원 분의 명복을 빌며, 용산 참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