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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전시 그리고 책

용산참사 그 후, '내가 살던 용산'을 읽고.

by Jay-ing 201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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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살던 용산, 을 읽고.

 

 

 

 

용산을 작품으로 다시 만났다. 얼마 전 두 개의 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만난 지 꼬박 세 달 만이다.

2009 1 20, 그 추운 겨울날 새벽에 용산에서는 6명의 사람이 죽었고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유가족들의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무뎌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이라면 3년의 시간이 지나고 4번째 기일이 다가온다면, 어느 정도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날의 용산은 지금까지 멈춰있었다. 해결된 것은 없었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일방적이었으며, 사회의 목소리가 모아지지 않았다.

 

 

 

 

 

 

두 개의 문이 경찰특공대의 시선과 진술로 이루어져있었다면, ‘내가 살던 용산은 철저히 철거민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두 개의 문에서는 현장 영상을 통해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 ‘내가 살던 용산에서는 경찰 특공대와 용역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철거민들의 입장만을 느낄 수 있었다.

두 개의 문이 시뻘건 화염과 보는 것만으로도 매캐한 검은 연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압도해왔다면, ‘내가 살던 용산은 소소했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다섯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갔다. 책에서는 남일동 망루에서 유명을 달리한 다섯 명의 철거민들의 삶을 조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석연찮은 죽음에 더 큰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책을 통해 용산 참사 희생자(철거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용산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산 철거와 직접적 관련이 없었던 한대성씨는 수원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의 행동을 오지랖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살던 곳 역시 재개발 구역이었고, 그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던 용산 철거민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망루에서 유명을 달리했고, 그가 살던 동네도 역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국가가 내가 사는 곳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다면, 개발하겠다고 결정한다면, 나는 내가 살던 곳, 내가 일하던 터전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그들이 땀으로 일궈놓은 생계 수단들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처음이 되어 혹은 처음보다 더욱 악화된 상태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철거민이 아니지만, 언제 내가 철거민의 상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국가는 재개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평가를 통해 보상금을 책정한다. 하지만 재개발 구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보상금을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보상금을 책정하고 보상을 하고 개발을 위해 그들이 살던 곳, 그들이 일하던 곳을 허무는 과정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단순히 주거를 위한 공간이었다 하더라도, 재개발이 확정되어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막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곳이 생계와도 관련이 있다면? 더욱 막막할 것이다. 사는 곳뿐만 아니라 일터를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개발을 위한 보상과 대책 마련은 천천히, 최소의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날 남일당 망루에 올라가신 분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으리라. 이미 재개발 구역으로 확정된 곳에서, 재개발 결정을 번복하라고 그 곳에 올랐을까? 아니다. 그들은 철거하는 동안 임시 상가를 내달라고 요구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몇 언론에서 그들은 보상비에 눈 먼 철거민들이 되어버렸다.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대다수의 재개발 구역에서 일어나고 있을 대립과 갈등이 표면적으로 올라온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355일 만인 2010 1 9, 철거민 다섯 분의 장례식이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구속된 철거민들은 차가운 교도소 안에 있고, 용산 참사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폭도로 몰린 철거민들의 명예 회복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시신을 부검했고, 수사 기록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다는 법원의 경찰에도 검찰은 수사 기록 3000여 쪽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날의 용산에는 피해자만 있었다. 모두가 거대한 국가 권력 시스템의 피해자였을 뿐이다. 상부의 명령을 받아 행동했던 경찰 특공대를 비난할 수 없고, 최소한의 삶을 지키고자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고, 이 참사를 묵인하고 방조하며 지나간다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섣부른 행동과 판단, 지나친 진압으로 무려 6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그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참사였다. 외면하고자 했고, 애써 내가 겪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경종을 울린 일이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라는 책 속의 마태복음 구절이 생각난다. 그 뜨겁고 무서운 곳에서 죽어갔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참사를 위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외침을 국가는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날 용산에서 희생되신 철거민 다섯 분, 윤용헌님, 한대성님, 양회성님, 이상림님, 이성수님과 경찰특공대 김남훈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