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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전시 그리고 책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읽고.

by Jay-ing 201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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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황녀, 아니 평생을 망국의 황녀로 살았던 시린 역사의 증인. 덕혜옹주.

한때 역사학자를 꿈꾸며 내가 가졌던 목표는, 발해사 연구였다.

우리가 더욱 잘 알아야 하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가 많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발해'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해동성국', 연결지어 10개의 단어를 더 말해보라고 했을 때 과연 몇 명의 사람이나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다.

 

덕혜옹주도 나에게 그러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공주. 그녀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그냥, 적다.

가려져있던 그녀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한 사람이 바로, 권비영 작가였다.

 

500년 조선 왕조의, 그를 넘어 대한 제국의 황녀의 지위를 가진 그녀의 삶에 드리운 역사는 차갑기만 했다.

그녀는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국권피탈이 일어난 2년 후에 태어났다.

 

 

 

 

 

 

 

그녀를 유난히 아꼈던 그 사람, 역시 조선의 비운의 황제. 고종이다.

고종에게는 딸이 4명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덕혜옹주가 외동딸이나 다름 없었다

환갑의 나이에 궁녀 복녕당 양귀인이 낳은 덕혜옹주를 위해서 즉조당에 유치원을 만들 정도였다.

지금의 말로 하면, 고종도 '딸바보' 였던 것이다.

 

4명의 자식을 먼저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고종이 덕혜를 애지중지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즉조당에 유치원을 만들어서까지 한 시도 덕혜에게서 눈을 떼고싶어하지 않았던 마음까지도 말이다.

 

 

 

 

 

 

 

 

 

아, 정말 예쁘다. 정말 총기가 보이는 예쁜 아이이다.

 

고종은 왕세자 이은처럼 덕혜를 일본에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고, 김장한(박무영)과의 결혼을 추진했으나 이게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1919년,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현재는 '고종은 독살을 당했다.'가 정설로 내려오고 있다.

1919년이면 덕혜옹주의 나이는 고작 8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할 수 있다.

8살에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이란, 그녀의 삶을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독살 당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심증일 뿐 물증이 없었고. 그렇게 아버지의 허탈한 죽음을 본 덕혜는 어쩌면 그 때부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끓는 물을 보온병에 담게 했다는 책의 내용은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했다.

독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언제나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살아야했던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황족에 올랐지만, 그랬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야했던 덕혜.

일본인 학교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림받으며, 이름없는 황녀로 살아야했던 아픔.

한 때, 조선 민중의 희망이었으나 일본에 의해 원하지 않는 정략결혼을 했고, 점점 잊혀져갔던 비운의 황녀.

부모의 죽음과 망해가는 나라를 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비참함과 자신의 무능함에 늘 고통받았을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덕혜옹주와 결혼한 소 다케유키이다.

 

 

 

 

 

 

그리고 이 사진이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책에서는 다케유키가 덕혜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으로 나온다.

다케유키가 덕혜를 위해 지었던 시들이 그 근거로 제시되는데, 이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의 황녀로 태어나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옷을 입고,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인과 결혼하고, 일본인의 피가 절반이나 흐르는 딸을 낳았던 그녀의 삶은 비참하고 처절했기 때문에,

그 슬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기를 바라는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이 책은 출판됨과 동시에 각종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책이었다.

책 제목 그대로, 망국의 황녀로 태어나 비운의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황녀로써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살다 갔을 것이다.

하지만, 식민 지배하의 조선에서 태어난 그녀는, 황족이기에 더 많은 감시를 받고 황녀로 태어났기에 자신의 뜻 한 번 펼쳐보지 못했다.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했고, 온 몸으로 낳은 하나뿐인 딸에게 '나는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던 황녀.

결국 정신병원에 갇혀 살았고, 그토록 원하던 조국 해방 후 조국으로 가는 길마저 쉽지 않았던 비운의 황녀.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두려워했고, 또 왕정복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덕혜옹주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고, 1961년 박정희 국가최고회의 의장이 일본에 방문했다가 이방자(영친왕의 부인)여사에게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덕혜옹주의 귀국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녀가 다시 조국의 땅을 밟은건 1962년.

1945년 조선 독립후, 그녀가 다시 조국에 돌아오기까지 꼬박 17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 아이가 바로 덕혜의 딸, 마사에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바랐던 정혜이다.

정혜 역시 조선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23살의 나이에 실종되었고, 일각에서는 자살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그토록 원하던 조국의 땅을 밟았으나, 1989년 4월 낙선재에서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해방 전에는 망국의 황녀로, 해방 후에는 비운의 황녀로 살아갔던 그녀의 삶이 애처롭다.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했지만, 조국이 잊었던 그녀, 덕혜옹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덕혜옹주의 삶을 읽고 그녀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차가운 저 땅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따뜻한 세상의 관심과.

한 많은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그 한을 나눠짊어질 수 있는 관심을. 우리가 줄 수 있길 바란다.